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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인텔, IBM, 구글…알고 보니 전부 '이 비자' 덕분이었다

기사입력 2025-09-24 17:07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의 수수료를 기존의 100배에 달하는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로 인상하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미국 기술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충격적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이끌어온 핵심 인재들의 유입 경로가 사실상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H-1B 비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H-1B 비자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그는 1992년 학생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가 중퇴 후 H-1B 비자로 신분을 전환해 미국에 머물 수 있었다. 머스크 스스로가 H-1B 비자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는 지난해 비자 발급 상한선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와 스페이스X, 테슬라, 그리고 수백 개의 다른 기업을 일군 많은 핵심 인사들이 미국에 있는 이유는 H-1B 때문"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전쟁도 벌일 것"이라고 밝히며 비자 제도를 강력하게 옹호한 바 있다.

 

머스크뿐만이 아니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이끄는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H-1B 비자를 발판 삼아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1988년 학생 비자로 미국에 건너와 석사 학위를 마쳤지만, 1992년 아내의 미국 비자가 거절당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영주권을 포기하고 H-1B 비자로 전환하는 과감한 도박을 감행했다. H-1B 비자 취득 시 배우자에게 동반 비자(H-4)가 나온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훗날 그는 회고록을 통해 "기적적으로 모든 게 잘 풀렸다"고 술회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또한 인도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H-1B 비자를 통해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경력을 쌓다가 2004년 구글에 합류한 케이스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이 H-1B 비자에 의존하는 이유는 고질적인 영주권 발급 적체 문제 때문이다. 영주권을 신청하고 발급받기까지 3년 이상이 소요되는 현실 속에서, 기업들은 H-1B 비자를 통해 외국인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 MS, 메타, 애플, 구글 등 대다수 빅테크 기업이 H-1B 비자 발급 건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엔비디아, 인텔, IBM, AMD, 우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 역시 외국 출신 CEO가 이끌고 있다. 대만 태생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우리는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으로 오기를 원한다. 이민은 우리 회사와 우리나라의 미래에 정말 중요하다"며 인재 유치에 있어 국경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새로운 수수료 정책은 이러한 흐름에 급제동을 거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빅테크 기업과 달리,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개리 탄 CEO는 "새 수수료가 빅테크에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스타트업의 다리를 꺾는 행위"라며 "H-1B 비자가 10만 달러짜리 통행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번 수수료 인상안은 미국 기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동시에, 미래의 '제2의 머스크'가 될지도 모를 인재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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