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생활

평택서 만나는 인간순례, 존재의 층위 응시

기사입력 2026-08-05 14:24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헤치는 거친 붓질과 내면의 향기를 투명한 유리로 빚어낸 섬세한 손길이 올여름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평택 베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희곤의 개인전 ‘인간순례’는 고정된 관념을 해체하며 인간의 형상을 다시 묻는 파격적인 시도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가는 캔버스를 찢고 긁어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단순히 외형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상처와 욕망,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 뒤섞인 인간의 복잡한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대형 회화 시리즈를 비롯해 드로잉과 조각, 설치, 영상 등 무려 200여 점의 작품이 베아트센터 전관을 가득 채우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개별 작품의 나열을 넘어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순례 경로로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은 벽면을 가득 채운 드로잉 설치물과 입체 작업 사이를 걸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조형 언어 전체를 동원해 존재에 대한 사유의 장을 펼쳐 보인다.

 


김희곤이 인간의 외연을 해체하며 본질에 다가간다면, 서울 종로 아트스페이스 퀄리아에서 열리는 권성경의 개인전 ‘서향(序香)’은 보이지 않는 향기를 매개로 내면의 기억과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작은 향병의 형태를 빌려 가장 귀한 향유를 깨뜨려 향기를 전했다는 성경 속 장면을 현대적 조형미로 재해석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유리병들은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관람객을 위로와 성찰의 순간으로 이끄는 통로가 되어준다.

 

전시의 핵심 재료인 유리는 뜨거운 불꽃의 시간을 견뎌내고 단단해지는 속성을 통해 인간의 성장을 상징한다. 고려청자의 미감을 살린 초기작부터 자개의 영롱한 빛을 품은 신작까지, 작품들은 저마다의 빛과 기록을 머금고 있다. 특히 진주와 자개의 화이트 톤을 강조한 최신작들은 향병의 밀도를 공간 전체로 확장하며 시각적 평온함을 선사한다. 투명한 유리 표면 위에 정교하게 수놓인 자개의 선들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인연의 끈처럼 부드럽게 번져 나간다.

 


두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와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김희곤이 거대한 순례의 길을 통해 존재의 무게를 성찰하게 한다면, 권성경은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긴 빛과 향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거친 파괴와 섬세한 창조라는 상반된 조형 세계는 동시대 미술이 인간을 위로하고 탐구하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여름의 정점에서 만나는 이 두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사유를 제안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평택의 광활한 순례 경로와 서울의 고요한 향기 속에서 관객들은 잊고 지냈던 자아의 얼굴과 내면의 빛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김희곤의 전시는 오는 14일까지, 권성경의 전시는 18일까지 이어지며 예술을 통해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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